괜찮아.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말이었다. 말. 단지 말뿐이었다. 조금 느린 것뿐이라고 괜찮다고.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고 느낀 건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아이는 자동차, 인형, 기차 등 많은 장난감들 사이에서도 말 모양 인형을 가장 아꼈다. 럭키라는 이름도 지어주며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럭키와 함께했다. 아이가 말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고 생각했지 그것이 자폐아이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도 남편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에게서 말 인형을 빼앗아 숨긴 적도 있었다. 말 인형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처럼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차츰차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싶어서였다. 점점 아이의 불안증세가 깊어지고 말 인형을 찾아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나였다.
아이에게 말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아니라 럭키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동물이 말이잖아라고 타일러봐도 아이는 고집 있는 말투로 말이 아니라 럭키라고 했다. 결국 또 그래, 럭키. 라고 대답을 한 나다.
아이가 말을 좋아하니 남편은 이제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주말에 아이가 좋아하는 말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가 뛸 듯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엷은 웃음이 지어졌다. 분명 많은 말들을 보고 다 럭키라고 부르겠지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지금 10살이다. 태어나서 살아있는 말을 처음 보아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럭키를 닮은 것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눈앞에 펼쳐져서 신기해서일까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속 감탄사만 연발하였다. 남편은 다정하게 아이의 손을 잡고 말을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말과 교감을 나누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도 무서워하지 않고 말과 교감을 나누었다.
“아들, 여기는 말 정말 많다. 그치? 말 어때? 다 럭키처럼 보여?”
“아니. 난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이 아이만 럭키라고 불러줄거야.”
아이는 뜻밖에도 말 한 마리를 콕 집어 말했다. 말이라면 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유난히 마음에 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가 어떤 결정이나 선택을 한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지나온 순간에는 그저 엄마인 내가 이건 좋지? 이건 별로다 안 그래? 이런 식으로 아이의 선택을 나 스스로 해왔다. 그것이 아이의 결정인양. 아이의 선택이나 생각은 뒷전이었다. 알면서도 아이의 상태를 내세워 그렇게 살아온 것이 미안해졌다. 충분히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날이 어두워졌다. 이제 그만 진짜 말인 럭키와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였다. 아이도 헤어짐을 아는지 더 있겠다는 떼를 쓰지 않고 말과 인사를 나누었다. 잘 있으라며 또 보러 오겠다고했다. 작은 손바닥위에 각설탕을 올려놓고 말이 먹을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었다.
마사에서 나와 아이를 데리고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로 향했다. 아이에게 천천히 우리가 별을 보러 오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반짝반짝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반짝반짝.
요즘처럼 선선한 가을에 보이는 별자리는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을 들은 후 무엇이 보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이가 말이 보인다고 했다. 말? 아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말로 가득한 것 같았다.
“아! 페가수스자리를 본 모양이구나?”
페가수스자리가 말 모양을 했다고 해도 저렇게 큰 하늘을 수놓는 별자리로 말을 떠올리긴 힘들 텐데.
“우리아들 대단하네.”
아이에게 참 오랜만에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 것 같다. 아이는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보였다.
또! 또 이야기 해주세요! 네?
손주 녀석이 주위를 맴맴 돌며 자꾸만 성가시게 군다.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성화다. 녀석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 늙은이의 소일거리가 되어버렸다. 딸애가 손주를 맡기고 외출을 했을 때 하도 심심해하기에 옛날이야기를 한 번 해준 것이 시작이었다.
“동화책보다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는 게 훨씬 재미있단 말이야.”
“할머니 귀찮으시니까 책을 보든가 비디오 봐. 네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빌려왔어.”
“싫어. 싫어,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이야기 들을 거야. 메롱~”
손주 녀석이 내 무릎위에 자리를 잡고 눕더니 기어이 눈을 감고 이야기를 기다린다. 하기야 이제 좀 더 크면 이런 어리광도 못 보겠다 싶어 못이기는 척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옛날 옛날에, 아주 탐스러운 사과나무 한그루가 있었어. 사과나무는 마을 한 가운데 우물 옆에 있었지. 처음에 마을사람들은 사과나무에 탐스러운 사과가 열리면 우물물처럼 공동으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어. 남는 것은 따다가 마을 공동 창고에 보관하면서 먹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에 큰 문제가 없었단다. 그런데 문제는 마을사람들의 탐욕이었단다.
언젠가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욕심이 자라났고 옆 동네 김씨가 자기네보다 더 많은 사과를 가져가는 것 같았고 옆 집 박씨가 더 탐스럽고 빛깔 좋은 사과를 먼저 골라가는 것 같이 느꼈던 거야. 마을 사람들 모두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탐스러운 사과나무가 자기네 소유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요? 막 싸우고 그랬어요?”
“원래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차는 순간이 문제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던 김씨가 사과나무 근처로 가서 마을사람들 몰래 탐스러운 사과를 따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한 다섯 개만 몰래 가지고 왔지. 그런데 도둑질이라는 게 습관이 되면 무서운 법이지. 하루 이틀이 지나고나니 김씨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열 개, 스무 개씩 몰래 따오기 시작했단다. 원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지.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회의 때 누군가가 사과나무의 사과가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김씨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를 내면서 그런 양심 없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걸리면 가만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 마을사람들은 김씨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면서 사과도둑을 잡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김씨는 머리를 썼단다. 자신이 도둑을 잡아오겠다고 큰 소리를 친 거지. 도둑은 아무래도 새벽녘에 나타날 테니 자신이 숨어 있다가 도둑을 잡겠다고 한 거야. 그리고는 날이 밝으면 도둑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 속셈이었단다.
날은 어두워졌고 김씨는 우물 옆에 숨어있었단다. 그리고는 잽싸게 사과를 땄지. 그런데 그 때였어. 마을 사람 중에서도 유독 김씨를 눈여겨 본 박씨였지. 박씨는 ‘도둑이다. 사과 도둑이 나타났다’라고 소리를 치며 긴 몽둥이를 휘두르며 김씨에게로 달려왔단다. 놀란 김씨는 그만 휘청하여 옆에 있던 우물에 빠지고 말았어.”
“헉, 그래서 김씨는 어떻게 되었어요? 우물에 빠져서 죽었어요?”
“뒷이야기가 꽤나 궁금한 모양이로구나. 우물에 빠진 김씨는 박씨에게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면서 그동안 자신이 사과를 훔쳤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단다. 박씨는 김씨를 용서하고 우물에서 꺼내어 주었지. 그런데 박씨가 우물에서 김씨를 구해주자 마자 김씨의 태도가 별안간 달라졌단다. 목숨을 구해준 박씨에게 오늘 일을 마을사람들에게 말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박씨를 협박했지. 박씨는 무서운 마음에 알겠다고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단다. 그런데 마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단다. 새벽녘이 되면 우물에서 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어.
자기가 사과도둑이었고 목숨만 살려준다면 마을사람들에게 잘못을 빌겠다고 김씨가 우물에 빠졌을 때 말한 내용이었지.
우물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에 김씨의 잘못이 온 동네방네 소문이 났고 김씨는 진정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잘못을 뉘우쳤고 박씨에게도 사과를 했단다.”
“이야. 역시 할머니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다음에도 또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셔야 해요!”
이번 이야기도 꽤나 재미있던 모양이다. 다음 이야기는 무엇을 들려주어야 하나 오늘도 행복한 고민거리가 하나 늘었다.
세월이 변하고 강산이 변하여 내가 사는 모습 또한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태백산맥 말단의 백양산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내 상세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백 년을 사는 속세의 사람들은 하루를 단위로 가치를 매기나, 수천 년을 사는 내게 하루하루는 덧없이 흐르는 세월 속의 한 자락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내 명도 다하여 백양산 어느 언저리에 조용히 젖어 들고자 하니, 눈에 띄는 것은 천 년 전이나 다름없이 운수사 뿐이라.
이 절이 처음으로 지어지던 날 또한 내 상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여느 때처럼 산을 한 바퀴 휘이 돌아 잠을 자러 가던 차에, 가야국의 사람 몇이 서까래가 될 나무들을 날라 오던 모습만이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잠시 몸을 숨기고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엿들어 보았었다.
“이곳에서 상서로운 운하가 피어오르는 걸 보았다는 게 정말인가?”
“그럼. 나는 본디 가락에 살던 사람이라 이 산을 자주 올려다보았네. 아침이면 이곳에서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꽃 무지개가 뜨는 것을 가락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았지.”
“그것 참 신통한 일일세. 아마 이 곳에 신선이 살고 있나 보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만 껄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수천 년을 살아온지라, 내가 기침하여 하품을 할 때면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기지개를 켤 때면 꽃 무지개가 뜨는 것을 가야국의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긴 모양이었다. 이 깊은 산중까지 내 흔적을 찾아올 생각을 한 것이 참으로 기특하여 운수사가 완공되었을 때, 이곳을 복전으로 만들어 줄 복두꺼비 한 마리를 몰래 내려 주었다.
그런데 운수사 터는 자꾸 넓어져만 갔다. 소원을 들어 준다는 영험한 두꺼비 바위를 찾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 끼의 공양을 짓는 데 쌀뜨물이 운수 계곡을 거쳐 십 리나 떨어진 모라 마을까지 흘러내릴 정도이니, 이 정도면 과하다 하겠다. 가야인들의 심성이 선하여 자연을 해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으나, 매일같이 인파가 다녀가니 내 몸 하나 편히 누일 곳이 사라져 가더라. 내 용왕과도 각별한 사이인지라 산신각 대신에 용왕각을 지은 것은 개의치 않으나, 날이 갈수록 산중이 소란스러워짐은 쉬이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내 중히 여기던 산의 한 자락을 기꺼이 내어 주었거늘, 어찌하여 산을 이리 마음대로 누리는가. 산중을 거니는 것이 유일한 내 귀에 매일같이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오니, 내가 견디기가 힘들어지는구려.”
벼르다 못해 주지 스님의 꿈에 나타나자 선한 주지 스님이 예상치 못한 호령에 황망해 하더라. 고민 끝에 주지 스님이 두꺼비 바위의 턱을 깨어 버리자, 본디 용왕에게서 맡아 바위 안에서 기르던 청사자 한 마리가 그대로 떠나 버렸다. 용왕께 돌려보낼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있었으나, 갑작스런 일에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한동안 구름이 피고 무지개가 뜨는 일 또한 일어나지 않으니,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줄고 종국에는 사세가 기울어 가더라. 미안한 마음에 세진당 모퉁이에 팽나무 한 그루를 심어 두었다.
두꺼비 바위에서 도망친 청사자는 범어사로 갔다 하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 운수사도 천년고찰의 칭호를 얻게 되니, 이 또한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왜적의 난으로 불에 탔던 건물도 모두 복원되었으나, 운수사의 낡은 처마 끝에 나와 함께 지내 온 세월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금정봉과 불웅령을 돌아 하천 줄기를 따라 낙동강까지 둘러보았다. 마실의 종착지는 언제나 운수사 대웅전 앞이다. 나와 함께 천 년을 숨 쉰 곳이니, 이 조용한 절에 녹아들어 신선으로서의 삶을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 년을 숨 쉬어 온 절과 함께 천 년을 더 걸어갈 꿈을 꾸니, 마지막 꿈으로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꿈이다.
옛날 옛적에 청도에는 아주 힘이 센 소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들은 항상 서로의 힘을 자랑하려고 다투기 일쑤였죠. 소의 뿔이 맞닿을 때마다 하늘과 땅이 흔들렸습니다. 청도에 사는 동물들과 식물들은 늘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투는 두 마리 소 때문에 하늘과 땅이 흔들리니 식물들은 땅에 뿌리 내릴 수 없었고, 동물들은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금세 풀들은 시들어 버리고 동물들은 서로를 힐난하고 다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도 소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힘이 비등하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어요. 뿔을 더욱 곤두세워지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힘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늘과 땅은 날이 갈수록 거세게 흔들렸죠.
결국 참다못해 적중산 중턱에 사는 지혜로운 감나무가 나섰습니다. 천년을 살았다는 이 나무는 청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황소들이라지만 감나무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죠. 감나무는 소들을 적중산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러고는 너희들 중에 저 하늘의 별을 떨어뜨린다면 자신이 아끼는 감 하나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별을 떨어뜨리기 전에는 둘이서 싸우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소들은 입맛을 다셨습니다. 감나무가 품은 감을 먹으면 힘이 더욱 세어지고 온몸에서는 아름다운 색동빛을 뿜게 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 또한 청도 감나무의 감은 반시라고 불리며, 그 육질이 굉장히 연하고 너무나 달콤해 한번 맛보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었거든요.
그때부터 두 마리의 소는 서로가 아닌 하늘의 별을 떨어뜨리기 위해 열심히 하늘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떨어뜨리려고 해도 별들에게 그들의 뿔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다투지 않고 머리를 맞댄 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답답했던 황소 한 마리가 산을 향해 뿔을 내다박았습니다. 그러자 뿔이 조금 부스러지더니 반짝이는 빛으로 흩어졌습니다. 밤에 흩날리는 빛은 마치 별들처럼 보였습니다. 어리석은 소는 그게 별인줄 알았습니다. 소는 감나무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만든 빛을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감나무는 감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들의 뿔은 조금씩 닳기 시작했고,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별로 보였습니다. 별을 가져올 때마다 감나무는 감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소들은 자신들의 뿔이 부스러지고 있다는 걸 조금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별을 만들어 달콤한 반시를 먹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습니다. 황소들의 뿔이 점점 닳자 하늘과 땅을 흔드는 소리도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적중산에는 커다란 구멍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적중산 중턱에는 아주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습니다. 그러자 소들은 서로의 뿔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들의 뿔은 점점 더 빨리 닳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날렵하게 크던 뿔은 아주 작아 흔적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소들이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하늘과 땅이 울리지 않았어요. 청도는 평화로워졌습니다. 하지만 소들은 멈추지 않고 별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뿔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소들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지금도 소들은 별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뿔을 맞대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소들이 만들던 별들을 기리기 위해 빛 축제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소복소복 눈이 내리던 날. 인애는 코끝이 빨개지도록 민준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날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인애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장갑을 낀 손은 따뜻해질 줄 몰랐고 몸도 점점 으슬으슬 떨렸다. 민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
인애와 민준은 같은 학교 선후배로 만났다. 인애는 긴 생머리에 항상 음악교재를 들고 다니며 뭇남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곤 했다. 민준도 그 중 하나였다. 인애는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다. 피아노 연습이 없는 날이면 동아리 활동으로 학교 방송실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학생들은 신청곡이나 사연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애에 대한 연애편지를 보내기 일쑤였다. 그런 인애가 민준을 만난 곳은 뜻밖의 장소였다.
법학과 학생이었던 민준은 인사관 건물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음료수 캔 하나를 뽑아 마시려 오백 원짜리 동전을 자판기 동전투입구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동전을 집어삼킨 자판기가 고장이었는지 꿈쩍도 안하는 것이었다. 민준은 자판기를 손으로 쿵쿵 쳐보다가 그래도 아무런 낌새가 없자 발로 쾅쾅 걷어차 보았다. 그때였다.
“저기, 지금 거기서 뭐하는 거예요? 자판기를 그렇게 걷어찬다고 음료수가 나오겠어요? 돈이 없으면 마시지를 말던가.”
민준의 행동을 본 인애의 가시 박힌 말이었다. 민준은 순간 당황하였고 부끄러운 마음에 손에 들고 있던 법학개론 책을 슬쩍 뒤로 숨겼다.
“저기요, 그게 아니라 돈을 넣었는데 이 자판기가 먹어서 잠깐 쳐본 거거든요?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참견이에요?”
“뭐라고요? 오지랖이요? 자판기가 돈을 먹었으면 연락을 하면 될 것을 그것도 법을 공부한다는 학생이 그래도 된다는 말씀이세요?”
인애가 민준의 책을 본 모양이었다. 민준은 얼굴이 홍당무보다 더욱 벌개져서 마른기침을 한 번 내뱉더니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살면서 특별히 죄를 짓는다거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낯 뜨겁고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인애 앞에서라니. 민준은 책으로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
민준은 오해를 풀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인애에 대한 정면승부인지 방송실에 사연을 보내기로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전 자판기에 대한 화풀이도 아니었고 그저 동전을 집어삼킨 자판기에 대한 작은 하소연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해서요. 신청곡은 없고 이 사연 들으면 정문 앞으로 4시까지 나와 줄래요?’
일을 저지르긴 했으나 정말로 인애가 나와 줄지 걱정이었다. 드디어 4시. 정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인애가 나왔다. 둘은 그렇게 만났다.
*
조금 더 있다가는 추위에 인애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뒤를 돌아서 가려는데 민준의 친구가 인애를 불러 세웠다. 지금까지 민준을 기다린 거냐며 민준이 오늘 열병이 나 학교에 못나왔다는 것이었다. 그저 서프라이즈로 일부러 전화기도 꺼놓고 기다린 것이었는데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전화를 많이 했을까 하고 전화기 전원을 켜보니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인애는 곧바로 민준에게로 달려갔다.
민준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보였다. 그 와중에도 코끝이 빨개진 인애에게 얼마나 기다린 거냐며 감기걸린것 아니냐고 물었다. 인애는 바보같이 아픈 사람이 누굴 걱정 하냐며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부엌으로 향했다. 달그닥 달그닥 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뒤 죽을 끓여왔다.
“그냥 편의점 죽 하나 사다주지 뭐 하러 이렇게 만들어. 그런데 이건 무슨 죽이야?”
“게살죽! 대게 살 발라서 이렇게 죽에 비벼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니까.”
“게살죽? 맛있겠다. 네가 살 다 바른 거야?”
“그럼! 나 아팠을 때 우리엄마가 항상 영덕대게 푹 삶아서 다릿살이랑 내장이장 참기름 한 방울 넣어서 쓱쓱 비벼줬거든. 그러면 한 그릇 뚝딱이었어. 그러니까 한 번 먹어봐.”
“맛있다. 정말, 힘이 불끈 솟는데? 고마워.”
다음날 방송실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인애는 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더니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뽑아들고 정문으로 향했다. 누군가에게 달려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초조한 마음에 소식 없는 문 앞만을 지키고 서있다.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고 남자는 자리에 멈추어서 소식을 말해줄이를 두손 모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문 안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 뒤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산모는 아이의 성별을 물었다. 아들인가요? 딸인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산모들 같으면 손가락 발가락 다 있나요? 혹은 아이는 어떤가요? 라는 말을 물었을 텐데 아이의 성별을 먼저 묻는 걸 보니 한참을 기다렸던 아들인가보다 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왔다. 아이의 성별을 말해주기 위함이었다. 방금 나온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들은 남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기뻤다. 딸이었어도 기뻤을 것이었지만 아들이라는 말에 조마조마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한참 만에 시골에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아이가 아들임을 당당히 말했다.
“그게 정말이가? 고추가 나왔단 말이지? 아이고, 장하다. 장해.”
“어머니도 참. 아무튼 그렇게 아세요.”
“그래, 마. 아가한테도 수고했다고 전해주고. 알긋나?”
남자의 엄마는 수화기 주변으로 모여 앉은 사람에게 아들이라는 단어 대신에 또 고추라는 단어를 쓰며 아들이 태어났음을 알렸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아가라는 말을 단어를 쓴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이제 시골집에 금줄에 고추를 매달아 놓을 것이다. 그리고 마을 잔치를 벌이시겠지.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시골에 계신 시부모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아들귀한 집안에 줄줄이 딸을 낳았으니 애가 타는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넷째를 가졌다는 말에 시골에서는 아들 낳기 좋다는 한약재들과 각종 음식들을 보내왔다.
그 중에서도 고추로 만든 음식들이 많았다. 여자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무리 아들을 바라왔던 이들이지만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고추를 많이 먹는다고 아들을 잘 낳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인구비율이 제대로 맞춰질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부담가지지 말라며 보내온 음식들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여자는 온몸으로 모든 시선과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의사는 양수와 분비물로 뒤섞인, 마치 핏덩어리 같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아주었다. 뱃속에 있다 나와서인지 따뜻했다.
“아들을 많이 기다리셨나봐요.”
“네. 많이 기다렸어요. 제가 그동안 고추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요.”
“아, 네. 참, 아이도 산모도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의사는 마무리 말을 하고 간호사에게 뒷마무리를 넘긴 뒤 자리를 벗어났다. 의사에게 괜한 소리까지 한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감격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이 아이가 딸아이였다면 아니, 또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했다. 맵기도 정말 매웠던 고추를 그렇게 씹어 먹으며 눈물로 기다리던 아이였다. 막상 기다리던 아들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슬픈 건지 몰랐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눈가가 매웠다.
남자의 걸음에 여자는 자꾸만 뒤쳐진다. 벌써 몇 번이나 천천히 걷자고 했으나 남자의 걸음은 자꾸만 빨라진다. 여자는 헤어짐이 아쉬워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느리게 걷고 있는데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재촉이다. 하지만 남자의 속마음은 헤어짐이 아쉬워 좀 더 많은 곳에서 여자와의 추억을 남기고 싶은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속마음이 어긋난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여자는 남자에게 시간을 물어보았고 남자는 자동적으로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지만 언제인지 남자의 시계가 멈춰있었다.
“시계 약이 다 달았나보다. 이 근처 시계가 있을 텐데.”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은은한 노랫소리가 울렸다. 여자와 남자의 시선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여기 이런 것이 생겼어? 못 보던 새에 여기도 많이 변했네.”
“그러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아.”
남자와 여자는 어느새 아찔한 높이의 시계탑 앞에 도착해있었다. 때마침 카리용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여자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따라 살며시 흔들렸고 여자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좋은 향기가 났다. 남자는 문득 이 향기가 그리울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계의 분침이 12를 가리킬 때 남자는 떠나야했다. 둘은 헤어짐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이미 수차례 생각하고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잠시 동안만 떨어져 지내는 것일 뿐 영영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답했다. 누구의 의견이 맞는지는 여자도 남자도 몰랐다.
“2년이야. 군대 갔다 생각하고 봐주면 안돼?”
“2년 후면 나 서른다섯이야. 군대 간 남친 기다리는 거 20대도 아니고 못해 난,”
“나 곧 가. 정말 이대로 헤어질 거야? 우리 아직 사랑하잖아.”
“그래. 아직 사랑한다면서 왜 가려는 거야? 그만하자 벌써 이 얘기만 며 칠 째야. 가. 잘 가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시간 없잖아.”
여자가 돌아서려는데 카리용의 노래가 절묘하게 멈췄다. 뒤돌아서려는 여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자는 남자를 쿨하게 보내주기로 하였기에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 때 남자가 여자의 팔목을 잡았다.
여자는 팔에 힘을 뺐고 남자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고 각자의 삶속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자는 기계에 몰두하여 밤낮없이 일을 했고 가끔씩 여자를 떠올렸다. 여자를 떠올리는 이유가 단순히 고향을 떠나온 외로움일 것이라 여겼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며.
여자도 나름대로의 생활에 바빴다. 주변에서는 얼른 다른 남자를 만나보라고 재촉도 하고 권유도 했지만 여자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남자가 파리의 시계탑 앞에 서있다. 시간은 12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고 여자도 우연히 혜천타워 앞에 서있다.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날 남자가 손을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남자가 그리웠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그때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손에는 인천행 비행기티켓이 들려있었다.
할머니 손에서는 매운 내가 난다.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면 할머니는 아이고 예쁘다 내 새끼 하면서 내 볼을 쓰다듬는다. 그때마다 매운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기 때문에 안다.
엄마, 일 좀 그만하시라니까. 엄마 고집도 참. 근데 저번에 담근 고추장은 잘 됐나? 하며 은근슬쩍 장독대로 향한다. 그럼 할머니는 말없이 빛깔 좋은 고추장을 아낌없이 담아주신다. 말은 일 좀 그만하라고 하면서 매번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가질러오는 엄마는 할머니가 정말 일을 그만두시길 바라는 것일까.
할머니는 늘 손끝이 아리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마당에 널려있는 고추들을 만질 때면 더욱 그러셨다. 고추를 만지면 손끝이 아리구나. 아린 다는 뜻이 무언지는 몰랐지만 만지지 않았다. 엄마는 마트에서 파는 고추장은 쳐다도 안 봤다. 내가 우연히 마트에서 할머니네 동네에서 나오는 고추장이라고 말했을 때에도 엄마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우리 동네 유명한 고추장 장인이셨다. 도심에서 수도 없이 맛의 비결을 물었지만 할머니는 고추장을 만들 때만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가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고 그때까지도 할머니에게 또 잔소리를 했다.
“거봐, 그러니까 내가 일 좀 그만하시라니까. 이게 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
…
“노인성 치매이신 것 같습니다. 정밀한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의사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엄마와 할머니는 이미 충격에 의사가 말하는 뒷말이 그저 소음으로만 느껴져 미간을 찌푸렸다.
“그…. 그러니까. 치매라고요? 저희 엄마가요? 얼마나 진행된 상태인가요?”
“아, 의사 소견상 치매인 것 같으나 아직 정밀한 검사를 …”
할머니는 소신 있게 자신의 소견을 이야기하는 여의사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일어났다.
항상 정갈하고 깐깐하게 한 길만을 고집하였던 할머니였기에 의사의 입에서 나온 치매 진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였다. 아니 할머니 자신이었다. 어쩐지 그런 할머니에게선 고추의 매운 냄새가 아닌 미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치매로 인해 가꾸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할머니조차 가장 아끼는 고추장처럼 발효되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고추장 다음으로 장독대를 제일 아끼셨다. 그곳에서 고추장의 맛이 깊어진다고 하셨으니까. 할머니 댁에 가면 마당에 담장을 끝으로 수십 개의 장독이 늘어서 있다. 언젠가 할머니께 이 장독대에 다 고추장이 들어있느냐며 팔짝 뛰며 신기해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의사에게 진단을 받으시고는 장독을 하나씩 깨뜨리기 시작하셨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분풀이였을 것이다.
엄마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니는 울지 않으셨다. 그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괜찮아 보일까 싶어서였을까.
장독을 세 개쯤 깨뜨리시던 할머니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으셨다. 그리고는 깨뜨린 장독에서 흘러나온 고추장을 맨손으로 매만지셨다.
“손끝이 아리구나.”
할머니의 기억은 점점 감퇴되었다. 하지만 할머니 손에서는 여전히 매운 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