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영도에는 조선 팔도에 하나 뿐인 기상천외한 다리가 생겼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구조의 도개교가 생겨난 것. 돛단배와 우마차가 다니던 시절에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가 열리니, 이 얼마나 커다란 구경거리인가! 영도다리 개통식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팔십 대 노인 한 분을 초빙하여 다리를 건너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전국 각지에서 이 다리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영도다리 앞은 항상 구름 같은 사람이 몰린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참 묘하게 되었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들이 천지였는데, 이들이 하나같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이다. 부산 땅까지 모두가 무사히 왔을 리가 만무한데도, 어미를 찾고 자식을 찾고 지아비를 찾는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40계단과 영도다리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은 탄성 대신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다리가 열리든 말든 이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영도다리 앞은 오래도록 북적였단다.
“어느으 세에워얼에에 너와아 내가아 마안나아…….”
“할아버지! 그 노래 좀 그만 불러요, 진짜!”
아버지가 또 어디서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오신 모양이었다. 이제 수험생이 된 딸아이는 제 할아버지가 술에 취했을 때마다 신경이 날카롭다. 앞서 영도다리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혹여 아버지가 어머니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조금만 있으면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아버지에게 불호령을 내릴 것이다.
아버지는 40계단과 영도다리를 오가며 꼬박 세 달을 기다린 끝에 어머니를 만났다. 영영 못 만나는 줄 알았다며, 두 분은 영도다리 아래서 얼싸안고 엉엉 우셨다고 한다. 원래부터 공처가이셨던 아버지는 그 기적적인 재회 이후로 평생 어머니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당신, 현정이 수능 못 보면 책임 질겨? 당장 그 노래 그치지 못하는가?”
그래서 어머니가 한 마디만 하시면 온 집안이 조용해진다. 한 번쯤 성을 내실 법도 한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만 봐도 행복하신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순한 강아지처럼 방으로 끌려 들어가신 뒤에 현정이가 한숨을 내 쉰다.
“아빠, 아빠도 엄마한테 저렇게 좀 잘 해 봐. 맨날 싸우지 좀 말고.”
내가 아내에게 나쁜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오산이다. 다만, 아버지만큼 잘 하기가 정말 힘들 뿐이다.
현정이가 아주 어렸을 때, 나와 크게 싸운 아내가 짐을 싸서 친정으로 돌아가 버린 일이 있었다.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일이라 누가 먼저 사과를 하느냐가 문제인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는데, 그 때 아버지가 나를 집 앞 대폿집으로 끌고 가셨다.
“이 녀석아. 사랑은 아무나 하는 줄 알어? 내가 그 때 네 엄마를 못 만났으면 말야, 가정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겨. 내 인생의 낙이 죄다 사라질 뻔 한 겨!”
또 그놈의 사랑 타령. ‘아버지가 뭘 아신다고 그래요?’하고 대꾸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랑에 있어서만은, 아무도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다.
아버지는 또 영도다리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전쟁이 나기 전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고구마랑 김밥을 싸 가지고 영도다리를 구경하러 왔었는데, 그 때 어머니가 그렇게나 예뻐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어머니를 데리고 영도다리에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쟁 통에 어머니를 잃어버리셨는데, 어디서 만나자 약속을 하지 못해서 무작정 어머니가 좋아하던 영도다리에 오셨다. 다른 먹을거리는 다 마다하고 기도하는 기분으로 고구마랑 김밥만 먹으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이쁜 아낙네 하나가 고구마랑 김밥을 먹으며 영도다리를 올려다보고 있더란다.
“그게 바로 운명이라는 거여. 너랑 며늘아가 사이에도 영도다리 같은 게 꼭 하나 있을 것인디, 그걸 모르니까 싸우고 그러는 거 아니여.”
그랬다. 어느 세월 속에서, 나와 아내가 만나 점을 하나 찍기까지 영도다리 하나가 없었을 리가 있는가. 나는 연애하던 시절의 앨범들을 죄다 펼쳐보고는 우리만의 영도다리를 찾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팔십이 넘은 노인네들이 결혼기념일을 맞아 여행을 보내 달라고 성화셨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럼 영도다리는 어떠세요?’하고 묻고, 아버지는 ‘영도다리? 이번엔 거길 한 번 가 볼까?’ 하신다. ‘임자, 올해는 영도다리에 가 보래.’ 하시며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시자, 현정이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맨날 똑같은 데 가면서 왜들 저러시는 거야?”
“녀석아, 사랑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어이없어 하는 현정이를 두고, 나는 즐겁게 차편을 예매했다. 올해에는 오십여 년 만에 영도다리가 열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