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네, 새댁!
반가운 말투로 인사를 하는 아주머니 말투에 아무런 반박도 없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실제로 오랜만에 들른 것도 아니었고 새댁 꼬리표를 달만큼 풋풋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시장으로 직접 올 때에는 시어머니의 부름을 받을 때이다. 결혼 준비 즈음 친구들은 시댁과의 거리는 최대한 먼 곳이 좋다고 했다. 없으면 더 좋고. 남자들이 생각하면 식겁할 이야기이지만 오죽하면 ‘시월드’라는 말이 나올까 한다. 거기에 시누이는 덤이다.
우리 어머님은 마산어시장에서 전어를 파신다. 우스갯소리로 너는 전어 때문에 절대로 집 나갈 일은 없겠다고 했지만 왜 없을까. 고부관계에서 기권을 들어버린 남편과 시누이가 무슨 벼슬인 줄 아는 시누이까지.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무작정 싫은 것은 아니었다.
새아가를 시장으로 불렀다. 며늘애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또 시장으로 부른다며 투덜거리는 음성이 귓가에 맴맴 돈다. 친구들이 왜 며느리 눈칫밥 먹으며 사냐고 당당히 살라고 하지만 요새 어디 그런가 싶다. 비린내 나는 손으로 손주 새끼들 얼굴도 못 만지게 하는 며느리 때문에 손주들을 미술관 전시품마냥 ‘좋아라’ 보기만 해야 할 때도 있다. 며느리와의 사이가 소원해진 건 시장을 맡아서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부터였다.
요즘 누가 시장에서 장사하는 걸 환영하겠느냐마는 그렇게 남처럼 퉁명스럽게 피할 줄은 몰랐다. 하기야 요새는 집 비밀번호 물어보면 왜 빈집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그냥 자기네들 있을 때 오라고 하라고들 한다더라.
“어머니, 저 왔어요. 그동안 별 일 없으셨죠?”
그동안 이라는 단어에서 어색함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남의 집에 오는 사람처럼 꼭 무엇을 들고 온다.
“뭘 이런걸 사와. 그냥 오지.”
“그래도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시장. 그만 두기로 했다고. 그 말 하려고 불렀다. 비린내도 지겹고 힘에 부치기도 하고. 그리고 너한테 이어받으라는 그런 말도 안하마. 그냥 팔기로 했어.”
“어머니.”
“아무 말 마라. 그렇게 하기로 했어. 아범도 그렇게 알고 있을 거고. 삼 대째 이어왔으면 그걸로 됐지. 언제까지 이어하겠니.”
시어머니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혔으나 그것은 원망도 미움도 아닌 굳은 결심으로 인한 후련함 때문이었다. 진작 이렇게 결정했다면 며느리와도 소원해지지 않았을 테고 마음도 한결 편안했을 것이다.
“어머니, 죄송해요. 그래도요 어머니, 시장 오기 싫다고 하면서도, 비린내 맡기도 싫다고 하면서도요 어머니, 우리 환이 가졌을 때요. 어머님이 구워주셨던 전어가 그렇게 생각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 한마디를 못하고…. 그런데 어머님 어떻게 알고 전어 보내주셨잖아요. 그때 저 솔직히 눈물 나더라고요.”
“왜 안 섭섭했겠니. 나도 처음에 우리 시어머니가 시장 도맡아 하라고 할 땐 벼락이라도 맞은 듯했는데. 그래도 이 전어 때문에 집 안 나가고 여기에 뿌리내리고 있던 거 아니겠냐.”
오랜만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만인가 싶다. 시장의 비릿한 생선냄새 대신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적당히 기름기가 낀 전어의 고소한 냄새가 난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이렇게 뛴다네. 내가 이 합천 흙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네.
이 늙은 소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겠나?
때는 고종23년 때였지. 그때의 고려는 바람이 부는 등불 앞에 촛불과 같았다네. 몽골의 침입이 끊이질 않았고 전쟁 통에 백성들은 두려움에 치를 떨었지.
끊임없는 약탈과 협박으로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지. 왕실이 휘청거렸지만 무신들은 달랐다네. 끝까지 싸워 이기고자 하였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네. 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에 몽골군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을 게야. 그래서 그때의 고려의 힘과 정신으로 버텨가던 맥을 끊어버리려 했던 거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시커멓게 타는 것 같다고.
성벽만 공격하던 몽골군은 군사를 이끌고 대구 부인사로 향했다네. 그리고 그곳에 모셔두었던 초조대장경 판목을 불에 태워버렸어. 나라의 뿌리였고 백성들이 버티고 버티던 마지막 정신이 함께 불타버린 것과 같았다네. 당시 고려는 불교를 나라에 힘이라 믿었고 나라가 부강해 질 수 있는 원동력이라 믿었다네. 그런데 그러한 대장경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만 셈이지.
백성들은 물론이고 고려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고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천리 밖 아니 만리 밖까지 새어나가, 문인들과 무인들은 혼란 속에 빠진 백성과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했다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도가 하나 있었지. 바로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 다시금 민심을 끌어 모으기 위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로 한게야. 하지만 팔만대장경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 계속된 전쟁 통에 대장경을 만들 재료도 부족했고 나무도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습도와 통풍이 잘 되는 곳에 터를 잡아야 했어. 그래서 이곳에 그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팔만대장경 재건에 나섰다네.
부처의 말씀을 목판에 새겨 넣은 것으로 먼저 굵기가 40cm이상이 되고 곧은 나무를 베어 길게는 2년 정도 진을 빼야 한다네. 경판 하나 준비하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
그런 뒤 경판이 건조되어 비틀어지지 않도록 경판을 소금물에 담 궈 두었다가 건조를 해야 한다네. 그렇게 소금물에 삶고 찌며 온 정성을 다해야 했다네.
그렇게 판자가 만들어지면 정해진 두께에 맞게 판자를 다듬어 나가야 한다네. 그리고 경판을 새길 때에는 엄밀하고 정성스럽게 새겨야 했다네. 마치 한 사람이 쓴 듯이 말이네. 이때에 경판을 작업한 스님들은 글자 한자 한자를 새길 때마다 절을 하였다네. 그리고 글자를 새겨 넣을 때에는 먹지도 자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지. 나라를 위하는 마음과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한 자 한 자를 새겨 내려갔다네.
한 획 한 획 지극히 간절한 믿음을 쏟아냈고 혼을 불어 넣었다네. 그렇게 판자에 모든 말씀을 새겨 넣었다네. 그렇게 새겨 넣은 판자가 오래 보관될 수 있도록 경판에 옻칠을 했다네. 목각판에 옻칠을 한 것은 팔만대장경이 유일하였지.
그렇게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단순히 부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이 아니었다네. 고려의 혼과 총력이 담겨있고 나라를 위하는 간절한 마음과 숭고한 믿음이 함께 불어넣어진 것이지.
어떤가. 무려 5천 2백만 자가 넘는 글자를 목판에 일일이 새겨 넣었을 때의 심정이. 느껴지는가.
지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하지만 그때 외부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우리 민족의 혼을 하나로 이어주던 그 염원을 헤아리는 사람은 없는 것 같더군.
그저 팔만대장경과 함께 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에 답이 없는 메아리만 고요하게 울릴 뿐이지.
해운대에 내려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날이 갈수록 날짜 세는 데에 무심해지고 있으니, 오늘 날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내가 쓰는 시간을, 내게 남겨진 시간을 세는 것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꽤 인지도가 있다. 추억을 남기려 내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는 꼭 배경으로 노을 진 바다를 함께 그려준다. 그것도 붉은 빛이 아니라 노란 빛깔로 노을 져 가는 바다를 말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한 서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여기에는 나만 알고 있는 사연이 있다.
무작정 그림을 그리겠다고 해운대로 내려왔다. 집안의 반대가 심하여, 어렵게 들어간 미술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하고 경영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떠나던 날,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꼭 안아주셨다.
“넌 어디 가서든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를 더 붙잡지 못하고 이 말만을 전하실 때의 그 심정이 어떠했는지, 나는 아직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꼭 성공하겠다는 막연한 한 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집을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부산 쪽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캐리커처를 그려 주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고작 몇 시간 뒤에 해운대에 닿을 수 있었으나, 해변에서 캐리커처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내게 쉬이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무턱대고 사람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아쿠아리움 앞에 앉아 자리를 폈다가 싸움이 붙을 뻔한 적도 있었다.
어느 흐린 날, 백사장 끝까지 밀려난 나는 그 날의 장사를 포기하고 해변을 따라 걸었다. 집을 떠나면 어머니의 된장찌개가 제일 먼저 그리워진다더니,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지금쯤 뭘 하고 계실까. 분명 비어있는 내 방에 들어가 내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시고 계실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꽤 멀리까지 와 버렸다. 친구들과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어 해운대 번화가의 지리는 꽤 잘 아는 편이었지만, 해수욕장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작은 목조계단이 보이고, 어느 새 동백섬 입구를 마주하게 된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동백섬으로 들어갔다.
앞길이 깜깜할 때 바다를 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망망대해 앞에 서 있으면 내 자신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절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순수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사람이 이만 원을 받고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기분만 우울해지는 것을 괜히 올라왔다고 생각하며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 때, 내 앞에 인어공주가 나타났다.
바위 위에 올라앉은 그녀는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대신, 한 손을 가슴에 얹은 채 발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손에는 구슬이 하나 들려 있고, 옷자락 아래로는 물고기의 꼬리가 숨겨져 있다. 무슨 연유인가 하니, 이 공주의 외할머니의 나라는 바다 아래의 수정국이며, 어머니의 나라는 바다 건너 나란다국이라 하였다. 공주가 이 동백섬에 시집을 와서 왕비로 살다가 두 나라를 몹시 그리워 하니, 그녀가 가진 황옥에 달 밝은 밤이면 두 나라가 비쳤다고 한다.
나는 청동상으로 만들어진 이 인어공주의 모습에서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때마침 해가 저물기 시작했는데, 흐린 날의 일몰은 새빨간 홍옥이 아닌 노오란 황옥 빛깔이었고, 그 공주의 이름도 모국의 이름을 따서 황옥이라 하였다. 황옥 공주의 쓸쓸한 등 위로 노랗게 타는 노을빛이 내리니, 나는 그때야 이 바다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운대 앞바다가 아닌, 고향을 그리워하는 황옥 공주가 앉아 있는 동백섬 앞바다를 말이다.
집을 떠난 지 한 달. 나는 그날에서야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지만, 쉽게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화가로서 당당하게 내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나는 그림마다 노랗게 타는 노을을 그려 넣었다. 찌푸리고 있던 인상을 펴자 다른 그림쟁이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하루하루, 느리지만 차근차근 내 자리를 잡아 지금에 이르렀다.
인적이 드물어지는 시간이면, 가끔 황옥 공주 옆에 가 앉아 함께 황옥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황옥에는 가끔 우리 집이 비치곤 한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그녀에게, 이제는 내가 되려 위로를 건넨다. 돌아갈 곳이, 그리워 할 곳이 있기에 바다가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뒤, 일곱 살 터울의 우리 남매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친척집에서 독립한 뒤로는 오빠가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하여 생활비를 충당했고, 둘 다 무사히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뒤에는 몇 년을 더 일하여 작은 카페 하나를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툰 기억이 거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서로를 이해하려 무던히도 노력해 왔고, 기쁜 일이 있어도 고민이 있어도 가장 먼저 서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오빠와 말다툼을 하는 일이 많다. 아마 내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여느 가정의 오빠들처럼, 우리 오빠도 내 동갑내기 남자친구를 덮어두고 싫어했다. 하지만 나도 이제 스물여덟이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도 될 나이에 여전히 보호받고 있다는 것은 때로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다희야, 너 또 걔 만나고 늦게 들어온 거야? 오빠가 말했잖아. 걔는 안 된다니까?”
나는 오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거실에서 오빠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방 안까지 들렸다.
오빠의 마음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빠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도 나는 초등학생이었으니, 오빠가 나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빠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나게 살길 바라고 있었다.
내 남자친구는 잘 생기지도 않았고, 집안에 돈이 많지도 않으며,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한다. 오빠가 바라는 내 신랑감이란 내 남자친구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어느 날은 오빠가 남자친구의 험담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내가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오빠는 마치 사춘기의 딸을 처음 대하는 아버지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나대로 감정이 상하여, 그대로 방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자기가 잘못했다며, 이 문 좀 열어보라는 오빠의 말이 계속 들렸지만 안 들리는 척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오빠가 오랜만에 나들이나 가자며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오빠에게 미안하여 슬그머니 도시락 싸는 것을 도왔다. 그런데 오빠가 뜻밖의 말을 전해 왔다. 내 남자친구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도착한 곳은 벽화마을이었다. 얼마 전에 조성된 마을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벽화마을들이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데에 비해 이 마을의 분위기는 완전히 시골이었다. 토담이나 돌담 위에 지게, 황소, 저고리를 입은 아이들, 단풍과 꽃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 분위기가 너무 따스하여 홀린 듯 골목들을 걸었다.
오빠는 남자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잠시 따로 데리고 나왔는데, 오빠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니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서 있었다.
“어, 이게 뭐야? 연리지는 봤는데 뿌리가 얽힌 건 처음 보네.”
우리나라에서 한 그루밖에 없는 귀한 나무라고 했다. 오빠는 나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사실 네가 죽을 때까지 나랑 함께 살았으면 했어. 솔직히 네가 나한테 동생이겠냐, 딸이지. 엄마랑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 때는 나도 중학생이었어. 초등학교에도 못 들어간 네가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 넌 그 때 어렸으니까 기억나지 않겠지만 고모도 우릴 많이 싫어하셨어. 너도 이제 시집 갈 나이이고 하니까, 네가 갑자기 결혼해서 집을 나가겠다고 하면 내가 누굴 보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더라.”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말을 마친 오빠는 ‘데이트 재미있게 해.’라며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어렸을 때라고는 해도 여섯 살 무렵의 일인데 왜 기억나지 않겠는가. 나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불쌍한 우리 오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일을 하러 갔다. 고모에게 제 손으로 번 양육비를 드리고, 몰래 저축을 하여 나와 함께 도망치듯 고모 집을 나왔다. 내가 잠든 뒤에 집에 들어오고, 내가 잠에서 깨기 전에 집에서 나갔기에 나는 제대로 된 우리 집이 생긴 뒤에야 오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자친구가 멋쩍게 웃으며 ‘내가 더 잘해야지.’라고 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오빠는 그냥 투정을 부리고 있을 뿐이야.”
나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가족처럼 정겨운 분위기로 물들어 있던 마을, 그 한 구석에 같은 땅을 붙들고 서 있던 연리목이 꼭 우리 남매의 모습 같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지겹도록 건조한 일상의 반복이 시작된 것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꽤나 오랫동안 나는 이 생활을 지속해 왔고 지금은 그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마치 오랜 기간을 만난 연인 사이에는 더 이상의 설렘과 풋풋함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그런거였을까. 오래 만난 연인에게 늘 찾아온다는 권태기처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건조하고 팍팍한 일상에서 한 번 벗어나 보고 싶다, 뭔가 말랑말랑하고 몽글몽글한 새로움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또 일상에 문득 찾아온 권태기가 점점 사그라들 때쯤, ‘딩동’하는 핸드폰 알람음이 울렸다. 가끔씩 눈요기용으로만 사용하는 SNS 친구신청 알림메시지였다.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내 인간관계에 새로울 사람이라고는 없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친구 신청한 그의 이름을 보니 어렴풋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세 글자, ‘조수호’.
그였다.
작년 여름, 한 9개월 전쯤이었지 아마. 회사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원하는 날짜에 휴가를 받지 못하고 남들 다 여름을 즐기고 난 후에나 느지막이 3일 휴가를 받았었다. 그래도 나름 휴가인데 하는 마음에 아무 계획 없이 덜컥 기차표부터 끊어 놓았다. 목적지는 파주,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최고의 결정이자,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나의 파주로의 반짝 휴가는 시작되었다. 여행은 늘 언제나 그렇듯 향하는 곳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적어도 나에게 파주는 그런 도시였다. 잘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두려움과 그래서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싶다는 벅찬 욕심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여행에는 음악이 빠질 수 없단 생각에 준비한 라즈베리필드의 ‘청춘열차’라는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혼자라도 왠지 기분이 좋은 여행길 / 설렘 가득 안고 달려가고 있어 / 낡은 철길 위로 맑은 하늘 바라보네 / 내 마음은 바람소리에 맞춰 춤을 춰
노랫가사가 내 마음의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행복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파주의 모습은 파랬다. 파아란 하늘과 초록나무로 가득 찬 이곳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제일 먼저 발걸음이 향한 곳은 말로만 듣던, 아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나도 아기자기하고 예뻤던, 파주출판단지였다. 좋아하는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엄마, 돈, 책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은 그런 존재다 내게, 그래서 더 ‘파주’라는 곳이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어떤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행운이었다.
‘행운’, 아마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조수호’. 그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출판단지 안에 있던 지혜의 숲이었던가. 온통 책으로 뒤덮인 그 곳에서 나와 그는 처음 만났고, 서로 통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의 미묘하지만 애써 담담하게 건넨 첫마디는 ‘저.. 책 좀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였다. 그리고는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는 그날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되었고 급기야는 다음날 임진각까지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알고 보니 그는 파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그럼에도 일부러 그러는 건지, 진짜 어리숙한 사람이여서 그랬는지 임진각을 가는 데에도 꽤나 애를 먹었다. 그래도 참으로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과 만나 함께 서로의 마음과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고 즐거운 일이였다.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을 그와 파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어색함이 감돌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두근거리고 떨렸던 나의 여행. 그는 더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지만 이제는 현실의 나로 돌아와야 할 때였다. 기차역까지 바래다주면서 그는 말했다. ‘은하씨, 우리 또 만나요. 또 만나고 싶어요.’라며, 그렇게 나는 떠나고, 그는 남았다. 그리고 그 뒤로 간간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주고받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점점 연락을 하는 횟수가 뜸해졌고, 절대로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이야깃거리도 다 써버린 듯 형식적인 인사들만 주고받다가... 그렇게 서로를 조금씩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딱, 내가 일상에서의 나른함과 권태로움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기라도 한 듯 먼저 손길을 내민 그에게 나는 어떤 대답을 주어야 할까. 그냥 친구신청이라기엔 너무나도 오랜만이고, 그렇다고 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에도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곧, 떠올랐다. 그를 위한, 아니 그와 나를 위한 명쾌한 대답을.
떠나기로 했다. 다시.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있는 그 곳, 파주로.
갑자기 지난 여름의 기억들이 하나 둘 내 가슴 속에 와 닿으며 또 다시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그래서 예전의 설렘과 풋풋함, 새로움이 가득한 나 자신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번에도 파주행 기차표를 덜컥 끊어버렸다.
옛날에 한 선비가 살았습니다. 이 선비의 머릿속에는 온통 과거시험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사실 이 선비는 과거시험만 벌써 일곱 번째 떨어지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여덟 번째 과거길에 오르는 것입니다. 선비의 꿈은 장원급제를 하여 어여쁜 색시를 얻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낙방을 하고 말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께 절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 문경쯤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목도 축이려고 주변을 살피었지요. 때마침 한 주막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갔지요. 그런데 매번 한양으로 갈 때 이 길을 지났는데 그 동안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주막이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으나 몸이 피곤하여 급히 따끈한 국밥 한 그릇과 탁주 한 사발을 시켰습니다. 며칠 동안 걷느라 지친 몸에 국밥 한 숟갈 들어가니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배가 부르고 몸을 추스르니 보니 이 주막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주모를 불러 이 주막을 불러 물어보려고 하였지요.
"이보시오, 주모. 내 이 길을 벌써 여덟 번째 지나는 것인데. 이 길을 지나면서 단 한 번도 이 주막을 본적이 없다네. 이 주막은 언제 생긴 것이오?”
“아이고, 이 주막이 언제 생긴 것이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이번에는 장원급제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 주막을 들른 사람 중에 과거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없다는 소문은 들으셨답니까?”
“그것이 사실이오? 아니면 나에게 농을 하는 것이오?”
“어찌 감히 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선비님께만 알려드리는 비밀이니 이번 시험에는 꼭 장원급제 하십시오.”
그렇게 선비는 주모가 알려준 대로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주모는 이 주막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나무에 앉아있는 노란머리의 새가 이끄는 길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장원급제를 할 수 있다고 하였지요. 그렇게 선비는 의심 반 믿음 반의 마음으로 큰 나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큰 나뭇가지 위에 노란머리의 새가 앉아있는 것이었지요. 선비가 놀라 크게 소리를 내자 노란머리새는 날아오르더니 천천히 낮게 날아 마치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았습니다. 선비는 신비로운 마음에 노란 새가 이끄는 곳을 따라 갔지요. 그런데 이 길은 선비가 매번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선비는 의심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주모를 믿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길로 가는 길은 경사가 높고 길이 험준하였습니다. 이렇게 흙을 밟으며 험한 길을 오르던 선비는 그동안 보지 못한 자연경관은 물론이고 천한 상민들의 고달픈 삶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특별한 비책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그 주모의 취기어린 한 마디에 우연으로 만난 새를 따라 온 것쯤이라고 생각하였지요.
그렇게 한양에 다다른 선비는 마음을 다잡고 시험지를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시험의 문제가 새를 따라 걸어온 길에서 보고 들은 상민들의 삶에 대한 것을 서술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선비라면 마땅히 이 나라 백성들의 성품과 삶을 두루 알고 있어야 한다는 주제였습니다. 선비는 당황하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생각을 써내려갔지요. 시험을 마친 그는 곧 장원급제를 하였고 고맙고 신기한 마음에 당장 그 주막을 찾아 고마움을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똑같은 자리에 그 주막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큰 돌 하나만이 놓여있었지요. 이 신기한 이야기가 입에 입을 타고 소문이 나 과거를 준비하던 선비들은 모두 새도 쉬어간다는 이 길을 통하여 과거시험을 보러갔고, 이 길을 통해 시험을 보던 선비들은 줄줄이 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녁때가 다가와 장 보러 나갈 준비를 하자 어린 아들이 또 마트에 가자고 성화였다.
“엄마는 마트 말고 시장 갈 거야. 같이 갈래?”
“싫어! 시장은 냄새난단 말이야!”
아이가 잔뜩 토라진 얼굴로 소리를 빽 질렀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내 오늘 저 녀석의 볼기짝을 때려 주리라 결심하고 뒤를 홱 돌아보았는데, 일곱 살 밖에 안 된 쪼끄만 게 눈치는 또 삼단이라 벌써 제 방으로 도망쳐버렸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아주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내게 모든 애정을 쏟아 부으셨다. 최신 전자기기를 반에서 가장 먼저 갖게 되는 것도 언제나 나였고, 가정부 아주머니가 말끔히 다려 준 교복을 입고 등교했으며, 방과 후 교문 앞에는 항상 나를 데리러 온 기사 아저씨가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했고, 내 환심을 사려 노력했다. 남들에게 없는 것도 다 있었고, 갖고 싶은 것이라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영화 속의 여주인공처럼 나날이 콧대가 높아져만 갔다.
어느 날은 교문 앞에 나를 데리러 온 기사 아저씨가 없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두 시간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아버지께 이 일을 다 일러바쳐서 혼쭐이 나게 해 주리라고 벼르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안이 소란스러웠다.
“영희야, 넌 안에 들어가 있어라.”
한 번도 내게 엄한 얼굴을 보인 적이 없던 아버지였는데, 표정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엿들었다. 아버지의 친구에게 명의를 빌려 준 일이 있는데, 모르는 새에 아버지 앞으로 빚이 엄청나게 쌓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가게를 팔고 새로 사업을 시작하겠다며, 나를 할머니께 맡기고 어딘가로 떠나셨다.
갑작스레 시골로 전학을 가게 된 것은 불만이었지만, 전에 사 두었던 워크맨 같은 것들이나 외국에 다녀온 이야기들로 쉽게 새 친구들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나는 빠르게 새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고, 학교에서는 모두들 나를 부잣집 딸로 알게 된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고기반찬이 하나도 없는 밥상 앞에 앉을지라도, 학교에서만은 여전히 내가 공주님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큰 약점이 하나 생겼다. 바로 할머니가 나물 장수라는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맡아 키우시게 된 이후로 밤낮 없이 나물을 캐러 다니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싫었다. 이제는 할머니가 매일같이 내 교복을 다려주셨지만, 우리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보다도 낡은 옷을 입은 할머니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하교하던 나는 저 만치 멀리 길바닥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우리 강아지, 지금 끝난 거여?”
할머니는 내게 반갑게 손을 흔드셨지만, 나는 친구들 앞에서 ‘이상한 할머니네.’하고 시치미를 뗐다. 할머니는 내가 보낸 경멸의 시선을 빠르게 알아차리셨고, 내가 그 앞을 지날 때에는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 계셨다.
이 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가세가 회복되어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까지 나는 한 번도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물을 다 팔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신 할머니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내게 저녁상을 차려 주셨다. ‘우리 강아지, 배고팠지?’하시면서 말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는데, 내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내 철없던 행동들을 반성했지만,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걷다 보니 어느 새 시장 입구였다. 간판까지 내 걸고 깔끔하게 새 단장을 마쳤지만, 거기에 서 계시는 노인들의 모습은 옛날과 다름이 없었다.
“아이고, 오늘도 나오셨네. 봐봐. 오늘은 고사리가 아주 싱싱해.”
허물없이 건네는 인사들과 웃음이 오갔다. 나는 이 반듯한 신식 시장과 그 안에서 어우러져 피어나는 구수한 웃음들을 보며, 새침데기 고등학생이던 나와 우리 할머니를 떠올린다. 그 때 웃으며 할머니께 인사를 드릴 수 있었더라면, 할머니와의 추억이 몇 갑절은 많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 동네에는 더 많은 마트가 들어서겠지만, 나는 그 때에도 골목을 누비며 시장을 찾아 낼 것이다. 그리고 그 귀퉁이 어딘가에서, 또 어느 할머니에게 나물 한 봉지를 사야지. 그런 생각들을 했다.
어쩐지 아침부터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이 자꾸만 꼬여갔다. 일정이 꼬이니 괜스레 기분까지 꼬이는 것 같았다. 일정이 꼬이는 것이 남자친구인 민준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자꾸만 민준에게로 향했다.
“그러게 조금만 서두르자니까. 점심도 그냥 밖에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 게 많은데 굳이 싸오겠다고 해서 이게 뭐냐?”
말이 조금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속에서 부글거리는 못된 세모마음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같이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냐. 밖에서 먹는 밥은 조미료 투성이라 맛없다며,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김밥도시락 만들었더니. 그만하자. 여기까지 나와서 이게 뭐하는 거야. 일단 레일바이크는 시간을 두 시간 반 정도 미뤘으니까 그 전에 뭐 할지나 좀 정해보자.”
모처럼 교외로 나온 나들이라 전날부터 계획을 짜며 알콩달콩하던 둘이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서로 입이 삐죽 나와 멀찌감치 걷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래도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던 레일바이크는 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민준에게 짜증을 낸 것이 미안했던 현지는 민준 쪽으로 가까이 걸으며 잠시 앉아 주변관광지를 검색해 보자고 했다.
“어! 여기 근처에 풀향기 허브나라 라는 데가 있는데? 사람들 올려놓은 사진보니까 꽤 아기자기 한 것이 멋지다. 다양한 체험들도 할 수 있대. 여기서 허브 구경 좀 하고 체험 하나 하면 시간 딱 맞겠다. 가볼래?”
역시나 민준은 꽤 괜찮은 남자친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으며 먼저 현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민준은 꽤 괜찮은 물건을 싼값에 얻은 사람처럼 즐거워했다. 현지도 그런 민준의 모습에 기분이 풀려 민준이 말한 대로 풀향기 허브나라로 가보기로 했다.
입구는 생각했던 것 보다 아름다웠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햇빛도 적당히 비추었고 가까놓은 정원은 단정하게 예뻤다. 풍차며 바람개비가 어우러져 이색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허브나라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괜찮았다. 정원에 놓인 갖가지 장식들은 동화속 세상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고 시간을 메우기 위해 급하게 찾아온 곳치고는 더 근사했다. 쭈뼛거리며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허브 구경하시게요? 모기 쫒는 허브부터 집중력을 높이는 허브까지 종류가 다양하답니다. 천천히 둘러보세요. 그리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으니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시고요.”
“아, 네. 허브 조금만 둘러보고 비누 만들기 체험을 해보려고요.”
허브 하나하나 마다 이름과 효능에 대한 설명이 짤막하게 나와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전자파를 흡수한다는 천사의 눈물이나 돈이 많이 들어온다는 행운의 나무, 남천과 같은. 민준은 남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듯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허브부터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허브들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다양한 허브 종류를 보고 비누 만들기 체험을 했다. 비누 원료에 천연 색소와 허브향을 넣고 귀여운 틀에 부운 뒤 굳혀주기만 하면 완성되는 것이라 어렵지도 않고 간단했다. 어쩐지 손에 허브향이 가득 배어있는 듯했다.
함께 만든 허브비누를 들고 레일바이크를 타러 향하는 길목에 어쩐지 자꾸만 미소가 번졌다.
“우리 오늘 일정은 다 꼬였는데 어쩐지 가끔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여행도 재미있는 것 같아.”
“그러게.”
마주잡은 두 손에서는 은은한 허브향기 번져나갔고 여행의 막바지를 향해 가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행복함이 번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