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의 아픔을 보듬다
- 전라남도 보성군 -
일제 당시의 슬픔, 우리 민족의 고난을 담은 소설 한 편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보성의 벌교읍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막히고도 가슴 절절한 이야기는 아직도 벌교천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이 너무나 크기 때문일까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모두 알기에는 조금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소설 ‘태백산맥’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태백산맥 문화거리입니다. 벌교천을 따라 걸으면 태백산맥 속 아픔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소설 태백산맥의 아픔을 따라 걸어라!’입니다.
부용교의 좁은 다리 옆으로 낡은 돌난간이 세워져 그 오래된 정취를 더하고 있다. 그 앞에 서자 오싹한 기운이 오른다. 이런 오싹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소설 속에는 부용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데, 이곳이 태백산맥 문학기행의 첫 장소가 된 이유는 과연 뭘까?”
“이 다리가 바로 ‘소화다리’야. 소설에서 말하는 총살이 날마다 일어났다는 그곳이지. 그러다보니 나무 아래에 자리한 갈대밭은 내려다보기에도 겁이 나는 걸?”
소화다리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하나의 통로이며, 아픈 역사를 고증하는 유물이 되었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이곳을 어떻게 묘사해놓았을까?
“이 다리는 1931년에 건립될 당시 일제에서는 소화(昭和, 일본국왕) 6년이었어. 그 이름을 붙인 것도 못내 서러운데, 이후 여순사건 갈등이 극에 치달았을 때는 더했지.”
“맞아. 총살이 이 다리 위에서 자행되었지. 소설에서도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겄구만이라’라고 했잖아.”
밤과 아침 사이, 낮과 밤 사이, 어둠과 빛 사이의 그 어정쩡한 시간에 벌교의 작은 포구에 다다르면 아름답고도 이유 없이 슬픈 감정이 일렁인다.
“이제는 쓸모를 다 한 낡은 두 척의 배만이 포구 한쪽에 묶여 있었구나. 하지만 언제든 배들을 껴안을 수 있는 포구에는 온 힘을 다해 밧줄을 당기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어.”
“아픈 역사를 보냈기 때문일까. 벌교라는 이름은 꼬막의 씨알처럼 굵고, 유명한 풍문의 주먹처럼 단단해 보여. 꼬막과 주먹이라는 큰 상징은 벌교를 독보적으로 만들어주었지.”
어머니의 손으로 한참을 주물러줘야 할 것만 같은 참 아픈 자리 벌교 포구로 가면 갈대숲 쪽에서 구슬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데, 어떤 소리일까?
“벌교 포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드넓은 갈대숲은 흘러나온 갯물을 빨아들이며 지금까지도 높이 자라 있구나. 잠시 귀기울여봐. 바람이 불면 희한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러게,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갈대 소리, 솔바람, 대숲 소리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는데, 유독 벌교의 갈대에선 울음이 들리는 것만 같아.”
소화다리와 중도방죽을 지나 태백산맥문학관과 현부잣집, 소화의 집을 보면 얼추 문학기행을 마친 셈이다. 유리탑을 거쳐 걷는 이 길이 소설 태백산맥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와,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구나!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2층이나 되는 전시관을 가득 메우고 있을까?”
“이곳에는 조정래 작가가 직접 손으로 쓴 육필 원고도 전시되어 있다고 해! 태백산맥의 흔적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 별교읍내로 들어서면 소설태백산맥문학거리에 다다르게 된다. 정갈한 소화의 집을 바라보면 당장이라도 소화와 정하섭이 뛰어 나올 것만 같은데.
“이 소화의 집은 작가의 집을 모델로 해 복원한 것이라고 해. 게다가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 곳이니, 그 가치가 더욱 높아 보여.”
“현부자네 집은 말 그대로 웅장한 것이 정말 부자의 집 같아. 그런데 보통 한옥의 모양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지어진 것일까?”
검은 판자가 촘촘히 붙은 독특한 2층집. 조금은 음침한 기분이 든다. 별교의 부조화에 한 몫을 하는 이 건물은 대체 어떤 곳일까?
“벌교읍내의 일본식 가옥 중에서도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는 것 같아. 수난과 고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같아!”
“맞아. 소설 속에서 일본군의 안식처로 표현 되었던 이곳은 실제로 ‘보성여관’이라는 곳이라고 해. 일본인들의 중심 거리에 위치한 여관이었지.”
난간조차 없이 뻗은 무지개 돌다리의 모습이 운치 있다. 벌교의 상징으로 불린다는 이 다리는 소설 속에서도 은밀히 드러난다는데?
“벌교라는 이름의 유래를 그대로 구현해 낸 것이 바로 이 홍교라고 할 수 있어. 해석해보면 ‘뗏목다리’라는 것인데, 벌교천을 건너는 뗏목이 바로 이 홍교인가봐.”
“벌교천을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벌교읍인 것 같아. 물론 아픈 역사의 잔재들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소설 속에 존재하는 곳이 이렇게나 명확히 남아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픈 역사와 시대, 그리고 이 곳 전라남도 순천의 벌교를 배경으로 펼쳐진 소설 태백산맥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녹차의 향기가 풍기고, 꼬막을 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이곳에도 아픈 역사의 흔적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아픔이 지금의 여러분을 있게 했음을 깨닫게 될 이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시는 것은 어떤가요? 정갈하게 가꾸어진 그 흔적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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