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스 바람이 떨려옵니다. 바람이 떨리니 비자나무숲도 함께 떨립니다. 살림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고 마당에는 은행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져 손님들을 먼저 맞이합니다.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고택에서 마른기침 한번 나더니 새하얀 버선을 신은 고산 윤선도선생이 걸어 나왔습니다. 크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몸종을 불러 앞 강가에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바람이 잔잔히 부는구나. 고기를 잡을까. 그냥 낚싯대만 드리울까.”
한손에는 부채를 들고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봅니다. 숨 한번 쉬고 시조 한번 읊으며 한가로이 시상을 떠올리고 있었지요.
그 때 고산의 증손인 윤두서 선생이 멀찌감치 고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윤선도 선생께 가볍게 인사를 올린 뒤 가만히 윤선도 선생이 시조를 읊는 것을 듣고 있었지요. 그러다 어렵게 말 한마디를 붙였습니다.
“한양의 소식은 이제 궁금하시지 않으신가봅니다.”
“그래. 이렇게 강과 바람과 흙과 함께하는 데 한양인들 벼슬인들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좋겠느냐.”
“예. 저도 외조부를 따라 여기서 시를 짓고 자연과 벗 삼아 지내는 삶이 더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윤두서 선생은 자리에 앉아 오늘 강가에서 바라본 갈대와 물결 그리고 바람의 존재를 알려주는 작은 꽃들의 움직임을 시로 표현하기 위해 짧게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즐겨 쓰던 붓이 닳아 새로운 붓을 사기위해 화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중국의 한 화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순간 화책에 매료된 선생은 곧바로 화책을 사들고 집으로 왔지요.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림을 보는 순간 시조를 읊고 시를 완성해나가는 것만큼의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바라본 강, 바람, 풍경들을 쉼 없이 그려나갔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른 채 붓을 계속 휘둘렀지요.
날이 밝았으나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한 나머지 매일 문안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큰일이라도 난 줄 안 윤선도 선생이 윤두서 선생의 집에 찾아왔지요. 그런데 방안에는 수없이 그려놓은 그림들과 화선지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조부인 윤선도 선생에게 어젯밤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두서야.. 그렇게도 그림이 좋으냐.”
“예. 그림은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고 더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좋습니다.”
“그래도 난 네가 나와 같은 길을 걸었으면 좋겠구나.”
할아버지 윤선도의 만류에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은 윤두서 선생은 자연풍경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풍속화를 그리는 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비록 유배지에서의 생활이었지만 이로서 더욱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윤두서 선생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본 윤선도 선생도 끝내 그 고집을 꺾을 순 없었습니다.
며칠 뒤 윤선도 선생과 윤두서 선생은 예전의 그 강가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윤선도 선생과 윤두서 선생은 각자 먹 그리고 화선지를 앞에 두고 말없이 붓을 들었습니다.
윤선도 선생은 해남의 물과 달, 바위와 소나무, 대나무의 덕성을 종이 한 장에 담았고 윤두서 선생은 화선지 한 장에 얇은 붓이지만 정확한 필치로 강하고 힘 있게 해남의 정경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었습니다.
윤선도 선생의 한 장의 시조와 윤두서 선생의 한 장의 그림이 어우러져 초록비가 내리는 해남에 하얀 불꽃을 만들어냈습니다.
나의 오래된 꿈 중에 하나는 바로 시인이다. 시는 곧 인생이며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여겨왔던 나는 늘 항상 옆구리에 오래된 시집 하나를 끼고 다녔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인지 시를 쓰며 세상을 그리고 현재의 환경을 비뚤어진 필체로 휘갈겨 쓰며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도 나는 내 인생이 탄탄대로의 삶으로 이어질 줄 알았다. 남들처럼 멋지게 시 한편 적어 신춘문예 당선은 물론 등단작가로서 시나 읊으며 살 줄 알았는데 나는 지금 그저 그런 글쟁이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도 조금의 위안이 된다면 국문과를 졸업했다는 희미한 스펙으로나마 자그마한 신문사에 취직을 하여 20여 년간을 묵묵히 시 곁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간간히 내로라하는 신문사의 이름을 달고 올해는 누가 신춘문예 당선이 됬다더라 누가 새로운 시집을 발간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저 밑바닥에 있던 꿈이 불쑥 하고 올라왔다 다시금 잠잠해지는 것 빼고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달까.
대학시절 나는 내 친구와 함께 ‘담쟁이’라는 시와 문학이라는 동아리에 가입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치 80년대 영화처럼 빙그르르 모여 앉아 서로의 시를 감상하며 우수에 젖어들곤 했다. 나는 그곳에서 단발머리 여자아이를 좋아했기에 그녀에게 들려줄 만 한 시를 쓰느라 밤새 몇 장의 종이를 찢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내 친구 녀석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가 좋아서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 모인 동아리 모임이 피 튀기는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을 무렵, 내 친구가 ‘소녀’라는 시로 발표를 할 때였다. 동그랗게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시의 소녀가 그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와 그 녀석뿐이었다. 어쩐지 그녀는 ‘소녀’라는 시를 무척 좋아했다. 이후 나는 제대로 된 게임도 못해보고 뒤로 물러나야 했고 동아리에서도 쫓겨나다시피 탈퇴를 하였다. 이후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친구 녀석은 유명한 시인이 되어 잘 먹고 잘산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서일까 그 친구 녀석에 대한 질투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저 유명한 시인이 되어 잘 먹고 잘 산다는 그 말에 잠시 동안 생각이 멈춰있을 뿐이었다.
“김부장님, 부장님도 소싯적에 시 쓰셨다면서요? 그럼 신춘문예 같은데 넣어보시지 그러셨어요. 아참, 이번에 칼럼대신에 <소녀>로 등단한 시인B님 시가 연재 될 예정이라는데 부장님 아는 사람일 거라고 하던데요?”
모르는 이야기다. <소녀>로 등단한 시인B라 하면 그 녀석인가 보다. 갑자기 내 책상서랍 제일 밑에 내가 가장 아끼는 시집이 생각났다. 그리고 가끔씩 시를 끼적이던 습작노트도 보기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분명 그 녀석에 대한 질투는 사라지고 난 뒤였는데.
나는 퇴근길에 언젠가 가보겠다며 벼르고 벼르던 시인의 길로 발길을 돌렸다. 젊은 날엔 호기롭게 여기에도 내가 쓴 시가 당당하게 한 자리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 이야기 하고 다녔는데 어쩐지 나는 이 길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녀석이 이 길의 중심 돌이라면 나는 그 곁에 머무는 나무 하나에 지나치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시인의 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지만 나는 이때까지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시의 그리고 시인의 언저리에서 머무는 삶처럼 살다 가려는 마음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길은 생각보다 짧았다. 무언가를 생각하기엔 짧았고 하나하나 음미하며 걷기엔 조금 길었다고 하면 맞겠다. 오늘의 기분을 시로 쓴다면 어떨까 하고 잠깐 생각해봤다. 어쩐지 육두문자를 머금고 들어선 시인의 길에서 지금 이렇게 길 마지막에 서 있는 지금은 나름 홀가분한 기분이 더 컸다.
시인의 길. “다 좋은 말들뿐이군.” 하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멀리서 여중생들의 무리가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분위기 확 깬다는 생각을 하며 획하고 뒤를 돌아본 순간 여중생들은 시인B, 그러니까 내 친구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야, 너 <소녀>읽어봤어? 그것도 시라고 썼냐? 촌스럽게.”
“원래 시는 촌스러운 거야. 몰라? 그리고 그 사람 나이가 있잖아. 그 정도면 봐줘. 그리고 요즘 누가 시를 사서 아냐? 그냥 교과서에 나오는 거나 대충 읽다 마는 거지. 그것도 시험에 안 나온다고 하면 시따위 그거 읽지도 않아.”
여중생들은 몇 마디 나누지는 않았지만 꽤나 마음에 맺히는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시인B의 시를 제멋대로 평가하면서 말미에는 시따위라며 시를 철천지원수인양 떠들어댔다. 나는 그 여중생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재빨리 시인의 길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시로 쓰여진 그 길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 한동안 쓰지 않던 ‘시 한편을 써야 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창밖에는 바닥이 하얗게 변할 만큼 꽤 큼지막한 눈발이 하얗게 나렸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또 저 노래다. 지겹지도 않냐고 물어보려다 가자마 눈을 하고 흘기는 것이 무서워 관둔다.
“그래, 창 밖에 봐봐, 당신이 요즘 그렇게 목청껏 불러 마다않는 겨울이야. 근데 원래 넌 여름이 더 좋다고 하지 않았어? 사람들도 활기차보이고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뼛속까지 시린 얼음골 폭포 보는 거 좋아했잖아. 겨울은 너무 추워서 싫다며.”
“응, 여름도 좋아. 그런데 난 우리 아이는 겨울에 태어났으면 좋겠어.”
아내는 갑자기 태어나지도 아니 계획에도 없던 아이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당황한 내 표정을 본체만체하곤 아이 그리고 겨울이야기를 독백처럼 떠들어댔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좋지.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니까.”
오늘은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만 떠들어 댄다고 핀잔을 주려다 꾹 참는다. 아내는 가끔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니까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전형적인 이과남자라며 이과생이 문학과 정서를 이해할 수 있겠냐며 소설책을 읽고 있는 내 손이 민망해 질 정도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오늘도 괜히 덤볐다가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했기에 잠자코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여름은 시원한 곳으로 찾아가니까 우리가 매년 얼음골로 피서를 가는 것처럼. 그리고 민소매도 마음껏 입을 수 있고. 그러니까 여름은 시원한 거고 겨울은 흰 눈이 온 세상을 감싸니까 왠지 따뜻해보여. 연말엔 기부도 많이 하니까.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겨울 겨울 그런다. 흰 눈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
“아니.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사과 때문에.”
사과? 네가 사과를 좋아했던가? 연애만 4년 그리고 결혼 2주년까지 총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네가 사과를 특별하게 좋아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무심했던 건가 생각해보지만 특별히 그렇지도 않았다.
“사과? 겨울하면 넌 사과가 생각난다고? 군밤이나 군고구마도 아니고?”
“그래. 사과! 아. 생각하니까 먹고 싶다.”
아내는 해맑은 표정으로 사과를 떠올렸다. 절로 군침이 도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특별히 과일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철이 되면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 중 하나를 골라 집어 의무적으로 섭취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사과? 먹고 싶으면 사다줄까? 이렇게 추운데. 눈이 펑펑 오는데?”
괜히 맘에도 없는 말을 던져본다. 그것도 암묵적으로 가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이다. 설마 다녀오라고 할까.
“정말? 그래 주면 좋고. 아참, 그냥 사과 말고 꼭 얼음골 사과로!”
오랜만에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낸다. 싫은 티를 팍팍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주면 좋다는 대답아 날아온 걸로 보아서는 어지간히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알겠어. 추우니까 요기 따뜻한 이불 속에서 조금만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오리털 점퍼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큼지막한 눈발이 내렸지만 앞이 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호호 나오는 겨울이었다. 아내는 이 한겨울에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한 얼음골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하는지.
과일 가게 앞에서 서성일 필요도 없이 사과를 찾았다.
“어머, 색시가 아기를 가졌나 보네, 얼음골 사과를 찾는 거 보니. 아삭하고 달콤한 게 태기가 있을 땐 그런 게 땡기는 법이거든.”
“아기요? 에이. 아니에요.”
“그래? 난 또. 아무튼 야무진 놈들로만 골랐으니 얼른 가져다 줘요.”
아기라고? 에이 설마.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다. 아내가 혹시 숨기고 있던 건가? 그래서 아까 아이 이야기를 꺼낸 건가? 머릿속이 흰 눈송이만큼 하얘졌다. 빠른 걸음으로 집 앞에 도착했다. 턱 끝까지 숨을 몰아쉬고는 문을 열었다.
“사과 사왔어! 아주 시원하고 아삭한 얼음골 사과”
아내는 이불 속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진녹색 군단이 한차례 지나간 자리에는 희미하게 짭조름한 냄새가 났다. 고된 훈련으로 나는 땀 냄새인지 순식간에 불어온 습한 바람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남자는 오늘도 구부정한 모습으로 연필을 깎는다. 그가 연필을 깎으면 늘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흑심이 길쭉하게 솟아오를 때까지 사각사각 말없이 연필만 깎는다.
남자와 나는 미군부대 PX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남자는 초상화를 그렸고 나는 그 옆 화방에서 그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팔았다. 물론 손수건이나 비상약, 껌 등 잡다한 물건을 팔기도 하였다. 사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담배나 껌, 손수건을 찾는 군인들이 많았고 대부분은 손수건이나 액자에 여자 친구 사진을 담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 가게의 정체성을 잃은 지는 오래다. 하지만 꼬박꼬박 남자는 이곳을 화방이라고 불러주었다.
남자는 항상 뭉뚝한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남들이 벙어리 환쟁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그의 무심함은 말 안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그는 꽤 자상한 성격이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미군들이 자신의 여자 친구 사진을 들고 와 초상화를 부탁하면 늘 사진보다 조금 더 예쁘게 그려주었으니까.
남자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졌다. 그래서일까 남자는 갈색 빛을 닮았다. 그는 초상화를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면 틈틈이 나무를 그렸다. 남자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왠지 아무도 찾지 않는 늙은 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초라하지만 굳은 심지가 느껴진 달까. 남자가 그리는 나무는 잎이 없고 푸르지 않은 발가벗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를 닮은 아주 진한 갈색 빛으로 나무를 단장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꾸부정하게 앉아 붓을 빨았다. 그를 보면 그가 그리던 고목이 떠오른다.
내가 남자에게 초상화는 예쁘게 그려주면서 나무와 여인들은 투박하게 그리느냐고 핀잔을 주면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만 짓는다. 얇은 종이가 구겨지듯 그의 눈 주위에 주름도 함께 구겨진다.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림이나마 좀 화려하면 어때? 원래 글이나 그림이나 다 환상 아닌가? 꿈도 꼭 그렇게 소박하게 꾸어야 겠냐는 말이야. 기왕 나무를 그릴 것이면 잎도 무성하고 큰 정원도 있고 정원을 가꿔주는 정원사도 있으면 좋겠지. 그리고 큰 나무 앞에 서있는 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여자가 부드러운 실크로 만든 옷을 입고 서있으면 더 좋고!”
나는 제법 똑부러지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남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아기 업은 단발머리 소녀. 조잘대는 말들이 피어오르는 빨래터. 개울을 건너는 소년.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선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것뿐이지.
내가 생각하는 인간상이 그런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무는 그런 것이야.”
남자는 늙은 나목과 함께 할아버지와 손자,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들을 그렸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다. 고무신을 신은 단발머리 소녀와 소녀의 등 뒤에 업힌 아기. 그것이 남자의 그림이다.
남자의 연필이 다 되어갈 쯤이었다. 그가 돌연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나는 왜 이렇게 갑자기 결정해서 통보 하냐고 섭섭한 마음을 어조에 담아 강하게 말하였으나 남자는 갑자기 결정한 것도 통보하는 것도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그는 어디로 간다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것만 같았다. 그는 한 그루의 초라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무심히 연필을 깎을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올 때쯤엔 새로운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붓을 선물해야겠다. 저만치 떨어져 한사코 거절하겠지만.
달빛이 그대로 비치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옆에 턱 와서 앉았다. 희끗하게 센 턱수염을 거칠게 깎은 박 씨 아저씨였다.
“강 씨, 오늘도 나왔네 그려.”
“박 씨 아저씨도 여전하시네요.”
오늘도 한적한 동네 냇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았다. 냇가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의 큰 지류여서, 우리 동네의 숨은 낚시꾼들에게는 아주 중한 장소였다.
퇴직 후에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어 수도권 언저리의 한 동네로 내려 온 것이 이래저래 좋은 선택이 된 셈이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이사를 온 뒤에도 한동안 동네 사람들과 소원하게 지냈는데, 달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란히 앉으니 자연스레 이야기꽃이 피는 것도 이 밤낚시의 묘미 중 하나였다.
나는 낚시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전문적으로 파고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다들 혼자 집에 있기가 심심하니 그저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하며 낚싯대 하나를 챙겨 냇가에 나왔는데, 어느 새 이 ‘낚시꾼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이가 고만고만한 중늙은이들이 전문적인 장비도 없이 나란히 낚싯대를 내리고 있으니, 고기를 잡는 일도 드물었다.
“옛날에는 물속으로 그냥 뛰어들어 손으로 잡아 올려도 월척이었는데 말이야.”
박 씨 아저씨의 농담에 다들 말문이 트였다. 아마 우리가 몇 번이고 터뜨리는 웃음소리에, 잡힐 고기들도 다 도망치고 말았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 재밌자고 하는 일인데 아무려면 어떤가 싶었다.
그래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조금은 고기 잡을 욕심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낚싯대를 바꾸고 미끼를 바꿔가며 애를 써 봐도 소득이 없더니, 어느 날은 항상 웃음을 주도하시던 박 씨 아저씨가 물골에서 손바닥만 한 붕어를 낚아 올리셨다. 박 씨 아저씨는 제가 고기를 잡고도 놀라신 모양이었다. 매일 농담만 주고받느라 낚시는 뒷전이었던 우리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물론이다.
다음 날, 낚시꾼 모임 멤버들이 나만 빼 두고 무슨 계획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실상 나만 빼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가장 늦게 이사 온 나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엿듣는 모양새가 되어 한참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다가, 성이 나서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좀 알자 했더니 모두가 껄껄 웃었다.
“그래, 강 씨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모르는 이야기겠네. 여기, 김 씨 아저씨 고향이 저어기 부산에 있는 가덕도인데 말이야. 거기 숭어들이가 아주 유명하다고 해서 작년부터 한 번 가 볼까 하고 있었지.”
“며칠 전에 박 씨 아저씨가 붕어를 낚았잖아? 그거 보고 이야기로만 들었던 숭어들이가 생각 난 거야. 마침 가덕도 숭어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기에, 거기나 한 번 가 볼까 하고. 강 씨도 갈 거지?”
먼 길 여정이 달가운 나이는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조금 꺼려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니, 배 수 척으로 바다를 둥그렇게 싸고, 숭어가 지나 갈 때에 그물을 들어 올려 잡는 것이 숭어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는 다들 고기를 이렇게 잡았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것은 가덕도가 유일하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낚시도 고기를 찾아 가서 잡는 게 아니라, 고기가 바늘을 물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우리에게 딱 맞는 축제지. 안 그런가?”
박 씨 아저씨의 말에 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축제 날짜에 맞추어 부산으로 떠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박 씨 아저씨가 남긴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자꾸 어른거렸다. 숭어들이는 어류장이라는 분이 있어, 그 분이 한 평생 동안 고기가 가는 길을 알려주신다 하였다. 망망대해를 보고 있다가도 숭어 떼만 지나가면 기가 막히게 바다 위의 배들에게 신호를 보내 주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낚싯줄을 곱게 감아도 보고, 낚싯대를 행주로 박박 문질러 닦아도 본 끝에 전화기 앞에 섰다. 저녁만 되면 낚시를 하러 나온 것은, 저녁만 되면 울리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나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한 번 들었다 놓아 보았다.
내일 낚시꾼 모임은 하루 쉬어야겠다. 내일도 숭어가 올 터이니, 내가 그 고기를 한 번 낚아보아야겠으니 말이다.
왠지 경상도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시골아이가 서울깍쟁이 여학생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멋들어진 사투리를 쓰고 무뚝뚝한 말투와 행동 속에 배어 있는 세심함이랄까?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 첫 경상도 여행길이다. 포항에 있는 친구에게 내가 내려가니 환영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버스에 몸을 싣고 유유히 안내팜플랫을 열어보고 있는데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미안, 나 갑자기 세미나가 잡혀서 나대신 내 친구 보냈어. 남자애야.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소개팅이라고 생각해! 이 언니의 예기치 않은 깜짝 선물이다. 좋은 시간 보내!’
소개팅? 좋은 시간? 이걸 말이라고. 황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는 무심하게 신호음만 연결할 뿐이었다. 다시금 차를 되돌릴 수도 없고 1박 2일을 혼자 보내기도 겁이 났던 나는 일단 남자가 나와 있을 것이라는 포항터미널에 도착했다.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김수정씨?”
“아, 네.”
이 남자인가보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포항터미널에서 갑작스럽게 만난 남자라니.
“연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경상도 남자한테 관심이 많으시다고 에스코트 좀 잘하고 오라고 하던데요?”
“아. 연주가 그래요? 아. 뭐..”
연주 이 기집애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보다. 그리고 이 남자. 낯도 안 가리고 싹싹한 면이 있다.
“배 안고프세요? 포항 오셨으면 과메기 정도는 먹어줘야 되는데, 드셔보셨나 모르겠어요.”
“아. 한번인가? 자주 먹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래요? 그럼 제가 제대로 먹는 법 알려줄게요. 가요.”
그렇게 처음 본 남자와 처음 와본 곳에서 점심을 먹으러 앉아있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며 남자의 추천으로 들어온 집이다. 주문한 과메기가 나왔고 남자는 김과 과메기, 갖가지 채소들을 얹더니 ‘아’ 해보라고 했다. 괜찮다는 대도 자꾸만 ‘아’해보라고 했다. 쌈이 풀어진다나. 그렇게 수줍게 받아먹은 과메기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리지도 않았고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어때요? 맛있죠?”
“네. 비리지도 않고 생각보다 고소하네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황금비율로 싸드려서 그래요.”
남자는 그러면서 싱긋 웃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일일 가이드로 일임한 남자를 따라 포항 이곳저곳을 다녔다. 남자는 경상도 남자답게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고 세심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수놓았다. 일출 명소인줄 알았는데 해가 저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저,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이렇게 일일 가이드도 해주시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보세요.”
“뭘요. 저도 포항 여행 제대로 했는데요. 참. 내일 오전에 해돋이는 보시고 가셔야죠? 아침 일찍 여기로 나올게요. 해돋이 보고 가세요.”
“네? 아. 괜찮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호미곶와서 일출 안보고 가면 여기 왔다고 명함도 못 내밀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일 6시 10분까지 나오겠다며 내일 보자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호의인가. 아니면 무엇일까.
다음날. 약속했던 시간이 약 30분이 남았음에도 모든 준비를 끝냈다. 애꿎은 시계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드디어 6시. 호텔 로비를 서성이는데 남자가 나와 있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코끝이 살짝 빨갛다.
남자는 곧 해가 뜬다며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일출 명소로 뛰었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 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와.’ 속으로 감탄을 삼키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걸었다.
“멋있죠?”
“네. 멋있네요.”
“그럼, 나는 어때요?”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수줍게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 깜짝할 새에 또 신년이었다. 맥주 한 캔을 사 와서 안주 없이 마시며 텔레비전으로 제야의 종 치는 걸 구경했다. 혹시 핸드폰이 울리지는 않는지 계속 확인 해 보았지만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들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차 때문이니 어쩔 수 없지. 혼잣말을 하며 이어지는 축하 무대를 본다. 벌써 삼 년 째 혼자 맞는 신년이었다.
“이런 호수 말고, 애들이 빨리 바다를 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내가 농담처럼 꺼낸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우리 부부 모두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이래저래 불편한 점도 많았고, 서러운 경우도 많이 당했었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계획을 준비한 듯, 일사천리로 서류 준비를 끝내고 아이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입버릇처럼 ‘우리 애 교육만은’하고 되뇌었었는데, 막상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에는 그 앞에서 펑펑 울지 않은 게 용하다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부럽지 않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로 신혼 때부터 약속해 온지라, 떠나는 가족들 앞에서 서운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나는 그렇게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새해 아침에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호숫가로 나섰다. 날이 꽤 추워 현관문을 열면서부터 옷깃을 손으로 꽉 여미고 나섰는데, 막상 나서보니 맑은 공기가 상쾌했다. 며칠 째 내리던 눈도 이제는 모두 그친 모양이었다.
가족 단위로 호수를 보러 마실 나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호수의 얼음 위를 걸어보겠다고 조심스레 한 발짝씩을 내 딛는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부모 손에 매달려 웃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아려왔다. 우리 아이들도 딱 저만할 텐데. 아니, 못 본 지 삼 년이나 되었으니 아마 머리 하나는 더 자랐을 것이다. 서러워하지 않기로 했는데, 외로움은 내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호수에 눈이 덮인 모습이 마치 저 멀리 남극 대륙에 온 것 같았다. 그 신비로운 모습을 렌즈에 담으려 애쓰는 남자도 보였다. 저 앵글 속에 내가 들어간다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목을 움츠린 내 모습은 펭귄을 닮았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가족으로서의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약이다. 하지만 수 년 간 쌓여 온 외로움이 사람을 점점 더 비관적이게 하고 있었다.
혼자서라도 떡국을 끓여 먹어야 하나, 친구를 만나 볼까. 이런 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는데,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비닐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 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라더니, 철새들이 먹을 모이를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 보았다.
“저어, 저도 한 번 해 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선뜻 준비되어 있던 봉투들 중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며 요령을 알려준 뒤, 제각기 몇 마디씩을 건넸다.
“겨울이니 청둥오리나 쇠오리, 쇠기러기 같은 녀석들이 찾아 올 거예요.”
“여기 사는 녀석들도 아니고, 한 철 잠시 다녀가는 녀석들이지만 반갑게 맞아 줘야지.”
나는 그들이 모두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들도 어딘가에 돌아올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들의 길목에 서서 다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언 땅에 모이를 흩뿌렸다.
벚나무 가지에 쌓여 있던 눈이 머리 위로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나는 이른 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벚나무 밑에 서 있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벚나무에서는 꽃잎이 흩날릴 것이다.
기다리는 일은 항상 생각보다 더디게 다가온다. 출근길의 버스나 고기가 낚시 바늘을 잡아 무는 순간, 아내의 귀가나 유채꽃이 피는 시기 같은 것들 말이다. 재희의 성화에 오늘도 호수공원에 나왔지만, 내가 이곳에서 사랑하는 것은 유채꽃뿐이다.
“아빠! 나 저 쪽!”
아이는 말을 배우는 속도가 더뎠다. 아내의 부재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마 나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나는 중학교 졸업을 최종 학력으로 가진 막노동꾼이었다. 그날, 아내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빨간 가방을 멘 채 유채꽃밭에 서 있었고, 나는 공원을 재정비에 동원되어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의 눈이 마주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썩어가던 더러운 하천이 말끔히 정비되어 아름다운 호수 공원으로 바뀐 그 해에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살림을 차렸다. 나는 쓰러진 장모님 앞에서, 아내를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살림이었지만, 불행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집 안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아내가 눈물을 흘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조금씩 나아지리라. 그러면 나는 아내에게 하얀 원피스를 선물하고, 아내와 나는 각자 아이의 오른손과 왼손을 잡고 유채꽃밭을 걸어야지. 아내는 장롱 안에서 빨간 가방을 꺼내 메고, 아이가 넘어지면 내게 주었던 노란 손수건으로 아이의 상처를 정성스레 닦아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빠, 나!”
재희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무심코 재희의 손을 뿌리치고 말았고, 어린애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당황해 재희를 안아 일으키고 무릎이며 팔꿈치를 살펴보았다. 아이는 울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다.
“엄마 생각 해?”
나는 울고 싶어졌다.
아내는 재희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돈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놈의 돈이 없어 차일피일 병원 가는 것을 미루다보니 어느 새 늦어버리고 말았다. 블라인드가 쳐진 병실이 아니라, 창문에 신문지를 붙여 둔 단칸방에서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다가 죽었다.
아마 아내는 마지막 순간에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타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겨우 기어 다니기 시작할 나이였던 재희는 엄마가 끝내 놓치고 만 빈 젖병을 안고 잠들어 있었고, 내가 집에 들어오자 옹알이 소리로 웃으며 나를 불렀다. 그 때부터 나는 왠지 아이가 무서웠다.
“다친 데 없지? 아빠 왜 불렀어?”
재희가 안내문을 가리켰다. 읽어 달라는 모양이었다. 안내문에는 장자못 설화가 적혀 있었다. 며느리는 장독대 뚜껑을 덮지 않은 것이 기억나 뒤를 돌아보았고,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단다. 우스운 이야기였다. 나는 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유채꽃이 피려면 아직 두 달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장미정원에는 장미가 만개했다고 한다. 나는 재희를 안고 천천히 둘레길을 따라 장미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옛날 장자가 살던 자리에서 커다란 고기들이 뻐끔뻐끔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고기가 숨 쉰 자리에서 동심원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재희가 내 옷깃을 꼭 잡고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심원이 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