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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한바탕 놀이판을 벌여보자, 별신굿탈놀이


유학 시절 만나게 된 외국인 친구가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 친구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를 한 가지만 추천해주고 가이드 해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안동을 떠올렸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소중했던 추억, 그 추억을 한국은 생소하게 느껴질 그 친구와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들썩들썩, 하회 별신굿탈놀이

10년 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돌아보겠다는 젊은 패기로 배낭 하나만 덩그러니 둘러맨 채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국도와 시골 길을 달리며 지도를 펼쳐보고 주변에 명소가 있으면 시간 제약 없이 찾아가는 말 그대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길에서 자기도 하고 시골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따뜻한 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여유로운 일정으로 전국을 둘러보다 도착한 곳이 안동이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은 낙동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한적한 곳에 위치해 우리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며 계승해나가는 도시였다.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봉정사, 안동댐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하회 별신굿탈놀이였다.

  • 안동시 하회마을 별신굿탈놀이는 중요 무형 문화재 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전거를 끌며 하회 마을을 둘러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한데 모여 왁자지껄 웃으며 흥겨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하회 탈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놀이에 심취해 춤을 추며 대사를 하는가 싶으면 어느새 너나 할 것 없이 관객과 하나가 되어 소통하는 모습이 어찌나 자유로워 보이고 신명 나던지. 나는 어느새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아마 이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탈은 쓰면 누구나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지며, 세상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탈이 가진 힘이자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현장의 분위기 따라 달라지는 즉흥 연주가 곁들여지니 절로 몸이 들썩거렸다. 공연자와 관객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판을 벌이니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관심을 끌게 했었던 사람들의 크나큰 웃음소리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의 소 새끼, 여 있었구나. 저놈을 잡아다가 여기서 큰 잔치나 벌여야 될따. 어디 보자. 네 수입소제? 안 그라모 안동한우라?”

같은 대사도 저렇게 사회 분위기나 현장 분위기에 따라서 자유롭게 응용하여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사에서 그들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중요 무형 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기도 한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무동 마당, 주지 마당, 백정 마당, 할미 마당, 파계승 마당, 양반과 선비 마당, 혼례 마당, 신방 마당의 8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계승에 대한 조롱과 양반 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해학은 박장대소가 터지면서도 마냥 웃기만 하는 놀이가 아니라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헛웃음을 짓기도 했던 일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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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는 굿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참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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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어우러짐은 탈놀이가 가진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다른 탈을 쓰고 있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탈이 두 개 있으니 각시탈과 양반탈이었다. 각시탈은 한쪽 눈이 가늘고 광대가 유독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절로 웃음을 자아냈다. 양반탈은 위로 향하면 웃는 얼굴, 밑을 향하면 성난 얼굴로 표정의 변화가 일어나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며 상황에 따라 극의 분위기를 한층 돋워 주었다.

신분과 질서가 엄격하였던 당시의 사회상으로 보아서는 양반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탈놀이가 어떻게 안동에서 유명했는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안동은 대표적인 양반과 선비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양반이 오히려 이러한 탈놀이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서민들은 탈놀이를 통해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였고, 양반들은 이러한 풍자와 해학을 보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깨달아 가는 기능도 했다고 하니 이야말로 신분과 계급을 어우르는 소통의 방식 아니었을까?

안동에서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 대한 추억은 지금도 내 가슴 속에서 한바탕 신명 나는 놀이판을 벌이고 있다. 이쯤 되면 먼 나라에서 찾아오는 친구가 아니더라도 내가 먼저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맘이 생길 정도다. 어서 빨리 그 친구에게 한국의 전통문화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 별다른 설명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저 눈으로 즐기고 관객과 공연자가 하나 되어 소통하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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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8년 10월 08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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