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역호감도

구로구, 세도가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공해와 빈민촌의 상징이라는 아픈 역사를 털어내고 첨단 산업단지로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는 구로구는 사실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민족의 역사적 발전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들을 역사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단지 그것이 조명 받지 못했을 뿐이다. 구로에는 역사적 사료로써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문화자원들을 가지고 있다. 

					
				

조선을 호령한 세도가 묘역들

구로구 정선옹주 묘역은 조선시대 안동권씨 집안과 결혼하여 세도를 누린 정선옹주의 무덤이다. 

정선옹주는 세도가인 안동권씨 집안의 권대임과 결혼해 현재의 궁동 일대에서 99칸(추정) 궁궐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 궁동이라는 이름도 정선옹주가 거처하던 곳을 ‘옹주궁’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궁동에 위치한 정선옹주 묘역(1694년, 숙종 20)은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대왕의 7녀 정선옹주의 무덤이다. 특히, 정선옹주 묘역의 신도비는 권협의 가계만을 따로 만든 것으로, 다른 신도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여서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높다. 

아울러, 류순정-류홍 부자(父子) 묘역(시도기념물 제22호)은 오류동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 유일의 아버지와 아들 묘다. 중종반정의 핵심 인물인 조선의 이조판서 류순정(1459~1512)은 박원종, 성희안과 함께 중종 폭군 연산(1506)을 권좌에서 축출하고 진성대군을 옹립해 왕으로 추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들 류홍 또한 중종반정에 참여해 공을 세워 ‘정국공신4등’에 책록됐다. 묘역 내 석물 또한 매우 정교하고 생동감 있는 조각기법과 강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고척동에 위치한 함양여씨 여계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0호)은 총 넓이가 1025㎡로 묘 2기, 묘비 1개, 상석 2개, 문관석 4개가 있으며 조선 초기 묘역 양식의 귀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수궁동 한복판 풍수의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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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동, 온수동, 궁동 일대에는 예전, 안동 권씨 가문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안동 권씨의 묘역이 있는 구로구 수궁동 일대는 조선시대 공신일가로 일컫는 안동 권씨 가문이 집성촌을 이룬 곳으로, 지금도 풍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그러면서 이 역시 귀중한 역사적 사료로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안동 권씨 문중 묘의 위치를 살펴보면, 주산에서 좌우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한가운데를 다시 짧은 산줄기가 남쪽으로 뻗었고, 그 끝에 저수지가 있다. 그러면서 고추처럼 생긴 산줄기가 낮은 언덕을 이룬 수궁동의 한복판 형세가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金鷄包卵型·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고추 모양 언덕 끝 부분에 안동 권씨 문중 묘가 있다. 

 

이름도 전설 따라가는 우렁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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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다양한 우렁바위. 과거에는 이 곳에서 마을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2동과 양천구 신정3동 사이의 계남 근린 공원에 있는 커다란 우렁바위는, 바위 무더기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 울음소리가 나는 것처럼 들려서 ‘우렁 바위’(鳴巖)라 명명했다. 하지만 이 우렁 바위는 이름이 참 다양하다.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얹는 안장 같다 해서 ‘길마 바위’라고도 했고, 바위가 감투를 닮았다 하여 ‘감투 바위’ 또는 ‘사모 바위’라고도 불렀다. 1990년 신정 배수지 공사 때 신정 산의 정상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1988년까지만 해도 매년 10월 초하루에 이 우렁 바위에서는 마을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는 도당 제를 지낼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대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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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5년 08월 17 일자